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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는 왜 더위를 '공기'로 풀어냈나

더위에도 우아함을 지키는 법, 에르메스의 답

Spec SheetMeasured
DeskJuwon
FormatVerified
Checked2026-10-07
StatusDesk verified

유럽에서 폭염이 더 이상 예외적인 날씨가 아니라 매년 돌아오는 기본값으로 자리잡으면서, 럭셔리 브랜드들은 우아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더위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티셔츠에 반바지, 샌들만 걸치는 것으로는 세련되지도 않고 옷이 팔리지도 않기 때문에, 얼마나 얇고 가볍고 시원한 옷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어떻게 조합해 완성된 스타일로 보여주느냐가 각 브랜드가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 전통 있는 메종일수록 이미 굳어진 소재와 실루엣에서 벗어나기를 조심스러워했던 터라, 더위 대응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캐주얼한 브랜드들의 몫으로 여겨지곤 했다. 에르메스는 202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이 질문에 소재나 기능성 표기가 아니라 '공기'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답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수석 디자이너 나데주 반에는 공기란 어떤 순간에는 느껴지고 어떤 순간에는 느껴지지 않는 성질을 가졌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그 감각 자체를 실용적인 실루엣으로 옮기는 작업을 택했는데, 이는 단순히 통기성 좋은 소재를 골라 쓰는 경쟁사들의 접근과는 결이 다른, 개념에서부터 구조를 짜 내려가는 방식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컬렉션의 출발점은 기능성 아이템인 파카였다. 파카는 원래 바람과 추위를 막는 옷이지만, 나데주는 그 틀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시어 소재와 얇게 민 레더로 바꿔 넣었다. 적당한 볼륨감을 주거나 때로는 길이를 늘여 가벼운 드레스와 스커트로 변형시켰고, 등을 가로지르고 팔을 따라가는 지퍼를 달아 열고 닫는 구조 자체를 디자인 요소로 세웠다. 지퍼를 열면 안쪽에서 몸판보다 더 얇은 원단이 드러나, 모델이 걸을 때마다 그 틈으로 공기를 붙잡는 움직임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레더 재킷에는 실링팬의 길고 가느다란 날개에서 착안한 플리츠를 넣어, 바람을 가르는 동작 자체를 재킷의 형태로 옮겨놨다. 반면 브랜드의 대표 아이템인 보디콘 스포티 헬시웨어는 실크 메시에 가늘게 자른 레더를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 공기를 붙잡는 파카 계열과 달리 공기를 가두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켜 내보내는 쪽을 택했다. 같은 '공기'라는 주제 안에서도 붙잡기와 흘려보내기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설계 기준이 공존하는 셈이다. 브라탑에는 에르메스의 시그니처인 스카프 카레를 가슴 앞에서 교차시켜 둘렀는데, 이번 시즌 카레의 무늬는 부채다. 원래 장신구였던 스카프가 여름 해변 리조트에 어울리는 상의로 용도 자체를 바꾼 것이다.

왜 지금인가

이 컬렉션이 눈에 띄는 이유는 더위 대응이 이제 특정 브랜드만의 숙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유럽 전역에서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많은 브랜드가 동시에 비슷한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얼마나 얇게, 얼마나 가볍게 만들면서도 브랜드 고유의 무게감을 잃지 않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리넨이나 코튼 같은 소재로 단순히 시원한 옷을 만드는 것은 기능적으로는 충분하지만, 그 자체로는 각 브랜드를 구분 짓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 에르메스가 택한 방식은 소재 차원의 해법을 넘어, 공기라는 현상 자체를 디자인 언어로 번역하는 쪽이다. 시어 소재와 플리츠, 메시 구조는 모두 실제로 통기성을 높이는 기능이 있지만, 동시에 실링팬 날개나 스카프 카레처럼 브랜드가 이미 갖고 있던 상징과 모티프를 더위 대응이라는 새로운 맥락에 다시 끌어오는 작업이기도 하다. 색상에서도 이 시점의 선택이 드러난다. 해바라기의 노란색과 초콜릿, 일몰을 연상시키는 오렌지를 조합한 팔레트는 더위를 식히는 쪽이 아니라 여름에 폭발하는 에너지를 드러내는 쪽에 가깝다. 시원한 파스텔톤으로 더위를 누그러뜨리는 보편적인 여름 컬렉션 문법과는 다른 선택이며, 이는 기후 대응이 반드시 차분하고 수동적인 색으로 표현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다음에 볼 것

이번 발표에서 가격이나 정식 출시일은 공개되지 않았고, 2027년 봄여름 시즌에 맞춰 순차적으로 매장과 쇼에서 구체화될 예정이다. 통상 럭셔리 하우스의 런웨이 공개부터 실제 매장 입고까지는 반년 이상의 시차가 있으니, 지금 공개된 실루엣이 실제 더위 속에서 입는 옷으로 바뀌는 과정도 지켜볼 지점이다. 독자 입장에서 비교해볼 기준은 분명하다. 같은 폭염이라는 조건 앞에서 다른 메종들이 어떤 소재와 구조로 답을 내는지, 그리고 그 답이 에르메스처럼 상징적 모티프를 재해석하는 쪽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기능 소재에 집중하는 쪽인지를 나란히 놓고 보는 것이다. 액세서리 라인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볼 만하다. 사이드에 스티치를 넣은 플랫 레더 부츠, 맨발에 스트랩을 두르는 카프리 스타일 샌들, 피시넷 디테일을 더한 소형 버킷백 등은 모두 더위 속에서도 가볍게 신고 들 수 있는 형태를 공유한다. 특히 이번 시즌 부채 무늬로 다시 그려진 스카프 카레는, 매 시즌 같은 정사각형 틀 안에서 무늬만 바뀌어온 아이템이 더위 같은 새로운 주제와 만날 때마다 어떻게 재해석되는지를 보여주는 참고 사례이기도 하다. 앞으로 다른 브랜드들의 2027년 봄여름 쇼가 이어지면서, 공기를 붙잡거나 흘려보내는 식의 설계가 업계 전반의 공통된 디자인 어휘로 자리잡을지, 아니면 에르메스만의 독자적인 접근으로 남을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 비교 자체가 이번 시즌 럭셔리 업계의 더위 대응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HERMES#Nadege Vanhee#WWDJAPAN#PROFILE#F.I.T#WWD
Repuse Lab · 2026-10-07 ·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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