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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 마랑, 32년 만에 처음 바뀐 손끝

창립자 아닌 디자이너가 처음 그린 이자벨 마랑

Spec SheetMeasured
DeskJuwon
FormatVerified
Checked2026-10-04
StatusDesk verified

파리에서 공개된 이자벨 마랑의 2027년 봄여름 컬렉션은 단순한 신작 발표가 아니었다. 1994년 브랜드를 세운 이자벨 마랑 본인이 아닌 다른 디자이너가 처음으로 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격으로 쇼 전체를 이끈 자리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 김 베커는 생로랑에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일한 뒤 이자벨 마랑으로 복귀했고, 2025년부터 전임 디렉터를 맡아 이번 쇼로 그 체제의 첫 공식 결과물을 내놓았다. 쇼의 콘셉트는 '흐릿한 여름의 꿈'이었고, 그가 참조점으로 택한 것은 1960년대 사진가 샘 해스킨스가 담아낸 여성의 이미지였다. 해스킨스는 1964년 사진집 '카우보이 케이트 앤 아더 스토리즈'로 약 100만 부 판매를 기록하며 당대 가장 널리 읽힌 사진작가 중 한 명으로 남았고, 그의 사진 속 여성들은 힘을 들이지 않은 자세에서도 관능과 자신감을 동시에 드러낸다는 평을 받아왔다. 창립자 한 사람의 시선으로만 32년을 움직인 브랜드가, 이제 그 시선과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점을 처음으로 갖게 된 셈이다. 그래서 이번 쇼는 옷 자체보다 '누가 디자인했는가'라는 질문이 먼저 따라붙는 자리였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꾸밈과 비꾸밈' 사이의 대비다. 평소라면 가장 캐주얼한 자리에 놓였을 티셔츠와 보드쇼츠가 레이스와 빈티지 식탁보용 리넨으로 다시 만들어졌고, 반대로 가장 격식 있는 조각적인 블랙·화이트 블레이저는 브로치로 뒤덮인 수영복과 마크라메 스커트 위에 아무렇지 않게 걸쳐졌다. 즉 격식의 위아래가 서로 자리를 바꾼 구성이다. 자수, 라인스톤 장식, 실크 위에 무겁게 매달린 비즈 같은 수공예 디테일이 컬렉션 전체를 관통했고, 마크라메는 등이 드러난 슬링키 드레스와 튜뷸러 스커트에서 다시 등장했으며 시퀸은 쇼츠부터 이브닝 피스까지 뒤덮었다. 레이어링도 핵심이었다. 레더 홀터톱과 시폰 베스트를 루즈한 셔츠 위에 겹쳐 입혔고, 손으로 그린 듯한 색 바랜 플로럴·페이즐리 패턴은 마랑 본인의 2013년 봄여름 컬렉션을 다시 끌어오는 식으로 겹겹이 쌓였다. 이브닝으로 갈수록 핑크·그린·코랄의 란제리풍 반투명 소재가 스모키 그레이와 블랙으로 가라앉았고, 은색 꽃이 점처럼 박힌 슬립 드레스와 금실 자수 재킷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소재와 격식의 위치를 서로 뒤바꾼 것, 그것이 이번 쇼를 이전 시즌들과 가장 분명하게 구분 짓는 지점이다.

왜 지금인가

이 컬렉션이 놓인 시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2026년을 거치며 패션계는 한동안 지배적이었던 미니멀리즘과 조용한 럭셔리 흐름에서 벗어나, 감정을 드러내고 개인의 취향을 강조하는 스타일링 쪽으로 무게를 옮겨왔다. 절제된 실루엣 하나로 완성도를 증명하던 방식 대신, 레이스와 마크라메처럼 손이 많이 들어간 디테일로 '보여주는 공들임'을 다시 꺼내는 방향이 여러 브랜드에서 동시에 감지되는 흐름이다. 이런 배경 위에서 1960년대 사진가의 이미지를 끌어와 과거의 관능과 자신감을 현재의 옷으로 번역하는 시도는, 복고 모티프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태도만을 가져와 지금 맥락에 맞게 다시 짜는 작업으로 읽힌다. 동시에 이번 쇼는 브랜드 내부적으로도 비교 기준을 남겼다. 창립자가 직접 디자인을 총괄하던 시기와, 외부에서 커리어를 쌓은 디렉터가 처음으로 전권을 쥔 시기를 가르는 경계선이 바로 이 쇼였다는 점에서다. 파리 패션위크라는, 한 시즌에 수많은 브랜드가 동시에 자신의 방향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이자벨 마랑이 내놓은 답이 '과거 참조와 현재적 재해석의 병행'이었다는 사실은, 창립자 체제에서 디렉터 체제로 넘어가는 브랜드들이 흔히 택하는 전략과 나란히 놓고 볼 가치가 있다.

다음에 볼 것

앞으로 지켜볼 지점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번 쇼에서 두드러진 '꾸밈과 비꾸밈의 자리바꿈'이 다음 시즌에도 이어지는 서명 같은 문법으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이번 한 시즌의 실험으로 끝날지다. 창립자가 아닌 디렉터의 첫 쇼는 보통 방향성을 시험하는 자리이고, 진짜 평가는 그 방향이 두세 시즌 연속으로 유지되는지에서 갈린다. 다른 하나는 레이스 티셔츠나 비즈 장식 실크처럼 쇼에서는 강렬했지만 실제 매장에 들어갈 때는 단순화되기 마련인 피스들이, 얼마나 원형을 지킨 채로 판매용 라인까지 내려오는지다. 보드쇼츠에 레이스를 입히는 발상은 쇼에서는 신선하지만, 가격과 생산 방식까지 고려하면 리테일 단계에서 상당 부분 걸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이번 쇼에서 마랑 본인의 2013년 봄여름 컬렉션을 다시 끌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브랜드의 과거 시즌을 참조점으로 쓰는 방식이 베커 체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치가 될지 여부다. 창립자의 과거 작업을 외부 디렉터가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다시 꺼내 쓰는지는 두 체제 사이의 거리감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척도가 된다. 공개된 룩은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에서 전체를 확인할 수 있으며, 같은 파리 패션위크 기간에 다른 브랜드들이 내놓은 2027년 봄여름 컬렉션들과 나란히 놓고 보면 이번 시즌 전체의 공기, 즉 절제보다 공들임을 다시 택한 흐름이 이자벨 마랑 한 곳만의 선택인지 업계 전반의 방향인지도 가늠할 수 있다.

#Isabel Marant#Hazy Summer Dream#Summer#Kim Bekker#Sam Haskins#Everyday
Repuse Lab · 2026-10-04 · ©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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